루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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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나 계획은 1958년부터 1976년까지 소련이 수행한 일련의 달 탐사 프로젝트이다. 이 계획은 달 충돌, 근접 비행, 연착륙, 궤도선 발사, 로버 투입, 그리고 달 토양 샘플 회수 등 다양한 유형의 임무를 수행했다. 루나 1호는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최초의 우주선이 되었고, 루나 2호는 달 표면에 도달한 최초의 인공 물체, 루나 3호는 달의 뒷면을 최초로 촬영했다. 루나 9호는 다른 천체에 연착륙한 최초의 우주선, 루나 10호는 달 궤도를 도는 최초의 인공위성이 되었으며, 루나 16호, 20호, 24호는 달 토양 샘플을 지구로 가져왔다. 루나 계획은 과학적 성과를 거두었지만, 미국의 경쟁 프로그램에 비해 성공률은 다소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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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계획 | |
---|---|
개요 | |
이름 | 루나 계획 |
원어 이름 | 러시아어: Луна Космическая Программа (Luna Kosmicheskaya Programma) 러시아어(간략): Программа Луна (Programma Luna) |
목표 | 달 무인 탐사 |
국가 | 소련 |
조직 | 해당 정보 없음 |
상태 | 완료 |
비용 | 해당 정보 없음 |
기간 | 1958년 ~ 1976년 |
발사 | |
최초 발사 | 루나 E-1 No.1, 1958년 9월 23일 |
마지막 발사 | 루나 24호, 1976년 8월 9일 |
성공 횟수 | 15회 |
실패 횟수 | 28회 |
부분적 실패 | 1회 |
발사 장소 |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 |
발사체 | 루나 8K72 몰니야-L 몰니야-M 프로톤-K/D-1 소유스 2.1b |
시각 자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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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루나 계획 (1958-1960)
소련은 초기 달 탐사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1959년 1월 루나 1호는 달과의 충돌에 실패했지만, 세계 최초로 지구 중력권을 벗어나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인공 행성이 되었다.[12] 1959년 9월 루나 2호는 세계 최초로 달 표면에 도달한 인공물이 되었으며,[7] 1959년 10월 루나 3호는 세계 최초로 달의 뒷면을 촬영하여 지구로 전송했다.[7]
2. 1. 초기 달 탐사 경쟁
1957년부터 1958년에 걸쳐, 소련과 미국은 인공위성 발사로 우주 개발의 첫 발을 내디뎠고, 우주 개발이 국위 선양의 적절한 수단임을 알게 되었다. 양국 모두 유인 우주 비행이라는 큰 목표를 품었지만, 유인 비행 개발이 본격화되기 전에 그보다 난이도가 낮은 달 탐사 경쟁이 벌어졌다. 루나 1호부터 3호까지는 이 과정에서 발사되었다.이 시대의 달 탐사는 달에 접근하거나 충돌을 목표로 했다. 미국은 1958년 9월에 파이오니어 달 탐사선 발사를 시작했지만, 충분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같은 시기, 소련도 달 표면 충돌을 목표로 루나 탐사선을 발사했지만, 로켓 고장으로 3번 연속 실패했다. 1959년 1월 2일의 4번째 발사에서 처음으로 달을 향하는 궤도에 탐사선을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를 '''루나 1호'''라고 명명했다. 루나 1호는 달에 충돌하지 못했지만, 지구의 중력권에서 벗어난 세계 최초의 인공 행성이 되었다.[12]

1번의 실패를 거쳐 1959년 9월 12일에 발사된 '''루나 2호'''는 세계 최초로 달 표면에 도달한 인공물이 되었다.[7] 3주 후인 10월 4일에 발사된 '''루나 3호'''는 달의 뒷면을 세계 최초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7] 지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면이었다.

1960년 4월에는 2기의 달 탐사선을 발사했지만, 이들은 모두 실패했다. 이후 소련은 유인 우주 비행 실현에 힘을 쏟았기 때문에, 달 탐사는 잠시 중단되었다.
미국은 파이오니어 계획으로 대항했지만, 뚜렷한 성과로는 파이오니어 4호가 달에서 60000km 떨어진 거리를 통과한 정도였다.
2. 2. 루나 1, 2, 3호의 성과
루나 1호(1959년 1월)는 달과의 충돌 계획에 실패하고 처음으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인공 행성이 되었다.[12] 루나 2호(1959년 9월)는 달에 충돌하여, 처음으로 달에 도달한 인공 우주선이 되었다.[7] 루나 3호(1959년 10월)는 달 주위를 돌아 처음으로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 사진을 전송했다.[7]1957년부터 1958년에 걸쳐, 소련과 미국은 인공위성 발사로 우주 개발의 첫 발을 내디뎠다. 양국은 유인 우주 비행이라는 큰 목표를 가졌지만, 그보다 난이도가 낮은 달 탐사 경쟁을 먼저 시작했다.
1958년 9월, 미국은 파이오니어 계획 달 탐사선 발사를 시작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같은 시기, 소련도 달 표면 충돌을 목표로 루나 탐사선을 발사했지만, 로켓 고장으로 세 번 연속 실패했다. 1959년 1월 2일, 네 번째 발사에서 처음으로 달을 향하는 궤도에 탐사선을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를 '''루나 1호'''라고 명명했다. 루나 1호는 달에 충돌하지 못했지만, 지구 중력권을 벗어난 세계 최초의 인공 행성이 되었다.
1959년 9월 12일 발사된 '''루나 2호'''는 세계 최초로 달 표면에 도달한 인공물이 되었다. 3주 후인 10월 4일 발사된 '''루나 3호'''는 달의 뒷면을 세계 최초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1960년 4월에는 두 기의 달 탐사선을 발사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후 소련은 유인 우주 비행 실현에 집중하면서 달 탐사는 잠시 중단되었다.
미국은 파이오니어 계획으로 대응했지만, 파이오니어 4호가 달에서 60000km 떨어진 거리를 통과한 것이 উল্লেখযোগ্য 성과의 전부였다.
3. 달 탐사 재개와 기술 발전 (1961-1968)
1961년 보스토크 1호가 세계 최초로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하면서, 소련은 미국과의 우주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이에 미국은 유인 달 착륙 계획을 발표하며 경쟁에 불을 붙였고, 소련은 루나 계획을 통해 달 탐사를 재개하며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1966년 2월 3일 루나 9호는 세계 최초로 달 연착륙에 성공하여 달 표면의 근접 사진을 전송했다.[12] 같은 해 3월, 루나 10호는 달 궤도를 도는 첫 인공위성이 되었다.[7] 루나 13호는 달 표면에서 토양 조사를 실시했다. 이러한 성과는 미국의 서베이어 계획보다 앞선 것이었다.
3. 1. 유인 달 착륙 경쟁
1961년 4월 12일, 소련은 보스토크 1호를 통해 세계 최초로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하였다. 이에 1961년 5월, 미국 대통령 케네디는 10년 이내에 유인 달 착륙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미소 양국은 유인 달 비행을 목표로 경쟁을 시작했다.소련은 유인 달 비행을 위한 기술 개발을 위해 루나 계획을 재개했다. 루나 4호부터 루나 14호까지는 새롭게 설계된 1.5톤 무게의 E-6(Ye-6) 시리즈를 사용했다. E-6는 유닛을 교체하여 달 착륙과 궤도 비행 모두에 대응할 수 있었다. 이는 미국이 충돌 탐사용 레인저 계획, 착륙 탐사용 서베이어 계획, 궤도 탐사용 루나 오비터 계획과 같이 세 종류의 탐사선을 개발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발사에는 기존의 보스토크 로켓보다 강력한 몰니야 로켓을 사용했다.
미국은 1962년에 레인저 탐사선 블록 2 (3호~5호)를 발사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1964년에는 레인저 블록 3 (6호~9호)를 통해 달 탐사를 재개하여 6호를 제외하고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미국은 착륙선과 궤도선 개발을 진행했다. 한편, 소련은 1963년부터 E-6 탐사선 발사를 시작했으나 초기에는 실패가 이어졌다. 그러나 1966년 2월 3일, '''루나 9호'''가 세계 최초로 달 연착륙에 성공했으며, 이는 서베이어의 운용이 시작되기 5개월 전이었다. 또한, 1966년 4월 3일에는 '''루나 10호'''가 세계 최초의 달 궤도 탐사선이 되었다.
루나 11호는 달 주변 환경과 표면을 조사했고, 루나 12호는 궤도에서 달 표면을 촬영했다. 루나 13호는 개량형 달 착륙선으로, 달 표면 촬영 및 토양 조사를 실시했다. 1968년 4월 7일 발사된 루나 14호는 유인 비행을 위한 우주선 통신 및 추적 실험을 수행했다.
루나 계획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었지만, 소련의 유인 달 착륙 계획(L3 계획)은 지연되었다. 달 근접 비행(L1 계획)에서는 미국보다 앞설 가능성이 있었고, 1968년 3월 이후 존드 계획의 테스트 비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주선 문제로 유인 발사가 연기되는 동안, 1968년 12월 미국의 아폴로 8호가 세계 최초로 유인 달 궤도 비행에 성공하면서 소련은 미국에게 추월당했다.
3. 2. E-6 시리즈 탐사선
1961년 5월,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10년 이내의 유인 달 착륙을 표명하면서 미국과 소련 양국은 유인 달 비행을 목표로 삼았다. 소련은 유인 달 비행 조사와 기술 개발을 위해 루나 계획을 재개했고, 루나 4호부터 14호까지는 새로 설계된 무게 1.5톤의 E-6(Ye-6) 시리즈를 사용했다.[10][11] E-6는 유닛을 교체함으로써 달 착륙과 궤도 비행 모두에 대응할 수 있었다. 이는 미국이 충돌용 레인저, 착륙용 서베이어, 궤도 비행용 루나 오비터 등 3종류의 탐사선을 개발한 것과 대조적이다. E-6 시리즈의 발사에는 기존의 보스토크 로켓보다 고성능인 몰니야 로켓을 사용했다.1963년부터 1966년까지 총 13번의 E-6 시리즈 탐사선 발사가 시도되었으며, 이 중 2번의 연착륙이 성공했다.[10][11] 1966년 2월 3일, 루나 9호(''E-6 No.13'')는 다른 행성에 연착륙한 최초의 탐사선이 되었다. 루나 9호는 5개의 흑백 입체 원형 파노라마를 전송했는데, 이는 달 표면의 최초 근접 촬영 사진이었다.[12]

3. 3. 루나 9호의 달 연착륙
1966년 2월 3일, 루나 9호는 다른 행성에 연착륙(소프트 랜딩)을 성공한 최초의 탐사선이 되었다. 루나 9호는 달 표면을 가까이서 촬영한 흑백 입체 원형 파노라마 사진 5장을 전송했다.[12]1961년 5월,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10년 이내에 유인 달 착륙을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미국과 소련은 유인 달 비행을 목표로 경쟁했다. 소련은 유인 달 비행을 위한 조사와 기술 개발을 위해 루나 계획을 다시 시작했다. 1963년부터 소련은 세계 최초로 달 표면에 연착륙하는 것을 목표로 E-6 탐사선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패가 계속되어 3년 동안 11기의 탐사선을 잃었지만, 루나 9호가 세계 최초로 달 연착륙에 성공했다.
3. 4. 루나 10호의 달 궤도 탐사
루나 10호는 1966년 3월에 발사되어 달 궤도에 진입, 달 주위를 도는 첫 인공위성이 되었다.[7] 1966년 4월 3일에는 루나 10호가 세계 최초로 달 궤도 탐사에 성공하였다.3. 5. 루나 13호의 달 표면 조사
루나 13호는 달 표면에 착륙하여 사진을 촬영하고 토양을 조사한 개량형 착륙선이다.[11]4. E-8 시리즈와 달 탐사의 확장 (1969-1976)
1969년부터 1976년까지 소련은 E-8 시리즈 탐사선을 통해 달 탐사를 확장했다. 프로톤 로켓의 개발로 더 무거운 탐사선을 달에 보낼 수 있게 되면서 E-8 시리즈 개발이 가능해졌다.
E-8 시리즈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 E-8: 달 표면 탐사차(루노호트)를 이용한 탐사
- E-8-5: 달 토양 표본 채취 후 지구 귀환
- E-8-LS: 달 궤도 탐사
1969년 루나 15호는 아폴로 11호와 거의 동시에 달 탐사를 시도했으나, 달 표면에 추락하여 실패했다. 1970년 루나 16호는 처음으로 무인 달 토양 채취에 성공하여 지구로 귀환했다. 1970년 루나 17호는 세계 최초의 달 탐사 로봇인 루노호트 1호를 달에 착륙시켜 322일 동안 탐사를 진행했다. 1973년 루나 21호는 루노호트 2호를 달에 보내 약 4개월간 탐사를 이어갔다.
1972년 루나 20호는 두 번째로 달 토양 샘플을 지구로 가져왔으며, 1976년 루나 24호는 마지막으로 달 토양 샘플(170g)을 채취하여 지구로 보내면서 루나 계획은 종료되었다.
이처럼 소련은 유인 달 착륙 계획은 좌절되었지만, E-8 시리즈를 통해 달 탐사 기술을 발전시키고 과학적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루노호트를 이용한 탐사는 달 표면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했으며, 달 토양 샘플 채취는 달의 구성 성분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했다.
4. 1. 프로톤 로켓과 E-8 시리즈
1960년대 말, 몰니야 로켓보다 강력한 프로톤 로켓이 개발되면서, 소련은 달에 5톤 가량의 탐사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 프로톤 로켓에 맞춰 설계된 것이 E-8(Ye-8) 탐사기였다.[17] E-8은 무게 5톤의 대형 달 탐사기로, E-6과 마찬가지로 여러 파생형이 존재했다. E-8은 달 탐사차를 이용해 탐사하는 형, E-8-5는 달 암석 채취(샘플 회수)를 수행하는 착륙선, E-8LS는 궤도 탐사기였다.E-8형 탐사기는 1969년에 발사 준비가 완료되었으나, 처음 두 번의 발사는 실패했다. 두 번째 발사에서 발사된 것은 달 토양을 채취하여 지구로 가져오는 E-8-5였다. 이는 아폴로 계획보다 먼저 달 암석을 지구로 가져와 소련의 기술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였다.
세 번째 발사에도 E-8-5가 사용되었다. '''루나 15호'''로 명명된 이 탐사기는 아폴로 11호 발사 3일 전에 발사되었다. 루나 15호는 달 궤도에 머문 후, 아폴로 11호의 착륙 직전에 달 표면으로 하강을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아폴로보다 먼저 달 암석을 얻을 수 있었지만, 탐사기는 착륙 전 감속에 실패하여 추락했다.
루나 15호의 실패로 소련은 미국보다 먼저 달 암석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유인 달 착륙을 위해 달 토양의 안전성을 조사하고,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E-8-5 발사는 계속되었다. 루나 15호 이후 3기의 탐사기가 프로톤 로켓의 고장으로 손실되었지만, 1970년 9월 12일에 발사된 '''루나 16호'''는 처음으로 무인 달 토양 채취 및 지구 귀환에 성공했다.
1970년 11월 10일에는 '''루나 17호'''(E-8)가 발사되어 세계 최초의 달 탐사차(루노호트 1호)를 이용한 탐사를 수행했다. 루노호트 1호는 322일 동안 10.5km를 이동하며 20,000개 이상의 텔레비전 이미지와 206개의 고해상도 파노라마를 촬영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18] 1971년에 발사된 루나 18호(E-8-5)는 두 번째 샘플 회수를 목표로 했지만, 착륙에 실패했다. '''루나 19호'''(E-8-LS)는 달 궤도 탐사기로, 1년 이상 관측을 수행했다. 1972년의 '''루나 20호'''(E-8-5)는 30g의 소량이지만 두 번째 달 토양 회수에 성공했다. 1973년의 '''루나 21호'''는 두 번째 달 탐사차(루노호트 2호)를 달에 보내 5개월간 탐사를 수행했다. 루노호트 2호는 약 4개월 동안 42km의 지형을 이동했다.[19] 1977년에 발사될 예정이었던 세 번째 루노호트는 발사체와 자금 부족으로 인해 발사되지 못했다.[20]
루나 16호(1970년 9월), 루나 20호(1972년 2월), 루나 24호(1976년 8월)는 달 토양 샘플을 지구로 가져왔다.[7][21][22] 세 임무에서 총 301g의 토양 샘플이 반환되었다.
4. 2. 루나 15호의 아폴로 11호 동시 탐사
루나 15호는 아폴로 11호 임무와 거의 동시에 달 탐사를 진행했다.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여 탐사 활동을 하는 동안, 루나 15호는 달 표면으로 하강을 시작했다.[7] 그러나 몇 분 후 루나 15호는 산에 추락하고 말았다.[7]당초 루나 15호는 아폴로 11호보다 먼저 달의 돌을 지구로 가져와 소련의 우주 기술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루나 15호는 아폴로 11호 발사 불과 3일 전에 발사되어 달 궤도에 머물렀고, 아폴로 11호가 착륙하기 직전에 달 표면으로 하강을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아폴로 11호보다 먼저 달의 돌을 지구로 가져올 수 있었지만, 루나 15호는 착륙 직전 감속에 실패하여 추락했다.[7]
4. 3. 루나 16호의 달 토양 샘플 채취
1970년 9월 12일에 발사된 루나 16호는 소련이 처음으로 무인으로 달의 흙을 지구로 가져온 탐사선이다.[21][22] 루나 16호는 Ye-8-5형 탐사기로, 달 표면에서 달 물질을 채취하여 지구로 귀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21][22]
소련은 미국보다 먼저 달의 돌을 지구로 가져오기 위해 루나 15호를 발사했지만, 루나 15호는 아폴로 11호의 착륙 직전 달 표면에 추락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소련은 달 토양의 안전성을 조사하고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E-8-5형 탐사기 발사를 계속했다.
루나 16호는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70년 9월에 발사되어 성공적으로 달 착륙 후 토양 샘플을 채취하여 지구로 귀환했다. 루나 16호가 가져온 월석은 총 101g이었다.[7][21][22]
4. 4. 루나 17호와 루노호트 1호
1970년 11월 10일에 발사된 루나 17호는 세계 최초의 달 탐사차인 루노호트 1호를 탑재하고 있었다.[7] 프로톤 로켓으로 발사된 루나 17호는 5톤 정도의 무게를 달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 루나 17호의 착륙선은 E-8(Ye-8)형으로, 달 표면 탐사를 위해 바퀴 달린 차량을 배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17]
루노호트 1호는 322일 동안 10.5km를 이동하며 20,000개 이상의 텔레비전 이미지와 206개의 고해상도 파노라마를 전송했다.[18] 이는 당초 예정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운용된 것으로, 큰 과학적 성과를 거두었다.
4. 5. 루나 20호의 달 토양 추가 채취
루나 16 (1970년 9월) 및 루나 24 (1976년 8월)와 함께, 루나 20 (1972년 2월)은 달 토양 샘플을 지구로 가져왔다.[7][21][22] 루나 20호는 30g의 달 토양을 채취하여 지구로 복귀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로써 소련은 두 번째로 달 토양 샘플을 회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4. 6. 루나 21호와 루노호트 2호
루나 17호(1970년 11월)와 루나 21호(1973년 1월)는 루노호트 탐사차를 달에 운반하여 달 표면을 탐사했다.[7] 루노호트 탐사차를 탑재한 루나 계획 착륙선은 '''Ye-8''' (러시아어에서 음역에 따라 '''E-8''')이라는 일반적인 지정을 받았다.[17]1973년 루나 21호는 루노호트 2호를 달에 내려 5개월간 탐사했다. 루노호트 1호는 322일 동안 10.5km를 이동했으며 20,000개 이상의 텔레비전 이미지와 206개의 고해상도 파노라마를 반환했다.[18] 루노호트 2호는 약 4개월 동안 42km의 지형을 이동했다.[19]
4. 7. 루나 24호의 마지막 달 토양 샘플 채취
1976년 8월에 발사된 루나 24호(E-8-5)는 루나 16호(1970년 9월)와 루나 20호(1972년 2월)에 이어 세 번째로 달 토양 샘플 채취를 시도한 탐사선이다.[7][21][22] 루나 24호는 달 토양 170g을 지구로 가져오는 데 성공했으며, 이로써 루나 계획은 막을 내렸다.루나 24호의 성공은 유인 달 탐사가 중단된 상황에서 달 연구를 지속하기 위한 소련의 노력을 보여준다. N-1 로켓의 계속된 실패로 유인 달 착륙 계획(L3 계획)이 1974년 5월 중지되면서, 루나 계획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루나 22호가 1974년 6월부터 1975년 9월까지 달 궤도를 탐사한 후, 루나 24호는 마지막으로 달 토양 샘플을 채취하여 루나 계획의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5. 루나 계획의 임무 유형
루나 계획은 다양한 우주선 설계를 통해 여러 유형의 임무를 수행했다. 사용된 탐사선은 10가지에 달했으며, 무게는 1호의 361kg에서 시작하여 5톤이 넘는 것까지 다양했다. 발사 로켓도 보스토크 로켓, 몰니야 로켓, 프로톤 로켓 등으로 변화했다.
루나 계획의 임무는 크게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충돌체 (Impactors): 루나 1호와 루나 2호는 달 표면에 충돌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루나 2호는 최초로 달에 도달한 인공물이 되었다.
- 근접 통과 (Flybys): 루나 3호는 달 궤도를 통과하며 달의 뒷면 사진을 처음으로 전송했다.
- 연착륙선 (Soft Landers): 루나 9호는 최초로 다른 천체에 연착륙한 우주선이 되었다. 달 표면의 상세한 사진을 전송했다.
- 궤도선 (Orbiters): 루나 10호는 달 주위를 도는 첫 인공위성이 되었다.
- 로버 (Rovers): 루나 17호와 루나 21호는 루노호트 탐사차를 달에 보내 달 표면을 탐사했다.
- 샘플 회수 (Sample Return): 루나 16호, 루나 20호, 루나 24호는 달 토양 표본을 채취하여 지구로 가져왔다.
5. 1. 충돌체 (Impactors)
루나 1호(1959년 1월)는 달과의 충돌에 실패하고 처음으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우주선이 되었다.[12] 루나 2호(1959년 9월)는 달 착륙에 실패하고 충돌하였지만, 처음으로 달에 도달한 인공 우주선이 되었다.[7] 이 두 우주선은 달의 앞면에 충돌하도록 설계된 예-1 (E-1) 충돌체 우주선이었다.[5][6] 1958년 9월부터 1959년 9월까지 6번의 시도 중 루나 2호가 유일하게 충돌에 성공하였다.루나 계획의 초기형 탐사선은 보스토크 로켓으로 발사되었으며, 무게는 수백 kg으로 비교적 작고 단순한 구조였다.
- '''E-1''': 1호와 2호에 사용되었다. 달과의 충돌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구체에 관측 장비와 안테나가 돌출된 형태였다. 자기력계와 가이거 계수기를 탑재하여 달과 지구 사이의 우주 공간을 관측했다. 1호는 달에서 6000km 거리를 통과했지만, 2호는 세계 최초로 달 표면에 도달한 인공물이 되었다.
5. 2. 근접 통과 (Flybys)
루나 3호는 1959년 10월에 달 주위를 돌며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달의 뒷면 사진을 처음으로 보내왔다.[7] 비행은 가장 단순한 달 탐사선으로, 감속을 위한 추진 장치나 달을 맞출 만큼 정밀한 유도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았다. 비행 탐사선은 일반적으로 '''예-2''' 및 '''예-3''' (러시아어 음역에 따라 '''E-2''' 및 '''E-3''')으로 지정되었으며,[8][9] 그 기능은 사진을 지구로 전송하는 것이었다. 루나 3호는 1959년 10월부터 1960년 4월까지 세 번의 시도 중 루나 계획의 유일한 성공적인 비행이었다.5. 3. 연착륙선 (Soft Landers)
소프트 랜더는 우주선이 파괴되지 않도록 속도를 줄이기 위해 로켓 추진을 사용한다. 이들은 달 표면에 착륙하여 사진을 촬영하고, 달 토양을 분석하거나 달 환경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10][11]루나 9호(''E-6 No.13'')는 1966년 2월에 다른 행성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한 최초의 탐사선이다. 이 탐사선은 다섯 장의 흑백 입체 원형 파노라마를 전송했는데, 이는 달 표면을 가까이에서 촬영한 최초의 사진이었다.[12]
루나 계획의 착륙선은 일반적으로 '''예-6''' 또는 '''예-6M''' (러시아어에서 번역하면 '''E-6''' 또는 '''E-6M''')으로 지정되었다.[10][11]
루나 계획에서 사용된 탐사선의 종류는 10가지에 달했으며, 무게와 발사 로켓에 따라 크게 세 가지 형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발사 로켓 | 형식 | 사용된 탐사선 | 비고 |
---|---|---|---|
몰니야 로켓 | E-6 | 루나 4호, 루나 5호, 루나 6호, 루나 7호, 루나 8호, 루나 9호, 스푸트니크 25호, 코스모스 60호 | 달 표면 연착륙을 목표로 했으며, 루나 9호가 최초로 성공. |
몰니야 로켓 | E-6S | 코스모스 111호, 루나 10호 | 궤도선 탑재. 루나 10호는 세계 최초의 달 인공위성이 됨. |
몰니야 로켓 | E-6LF | 루나 11호, 루나 12호 | 궤도 탐사선으로, 관측 장비가 증강됨. |
몰니야 로켓 | E-6M | 루나 13호 | E-6 개량형 착륙 탐사선. |
몰니야 로켓 | E-6LS | 루나 14호 | E-6 시리즈의 마지막 궤도 탐사선. |
프로톤 로켓 | E-8-5 | 루나 15호, 루나 16호, 루나 18호, 루나 20호, 루나 23호, 루나 24호, 코스모스 300호, 코스모스 305호 | 달 토양 샘플 채취 및 귀환 계획. 루나 16호, 루나 20호, 루나 24호가 성공. |
프로톤 로켓 | E-8 | 루나 17호, 루나 21호 | 무인 달 탐사차 루노호트 탑재. 루나 17호의 루노호트 1호는 세계 최초의 달 탐사차. |
프로톤 로켓 | E-8-LS | 루나 19호, 루나 22호 | 대형 달 궤도 위성. |
프로톤 로켓 | E-8-6 (중지) | 생명 유지 장치와 유인 달 착륙선 유도 장치를 갖춘 무인 달 탐사차 계획이었으나 중지됨. |
5. 4. 궤도선 (Orbiters)
루나 10호(1966년 3월)는 달의 첫 번째 인공위성이 되었다.[7] 궤도선 우주선은 착륙선보다 추력과 추진제가 덜 필요했지만, 여전히 달 궤도 진입을 달성하기에 충분한 양이 필요했다. 루나 계획 궤도선은 일반적으로 '''Ye-6LF''', '''Ye-6LS''', '''Ye-6S''' 또는 '''Ye-8LS'''로 지정되었다 (러시아어에서 음역에 따라 '''E-6''', '''E-6LS''', '''E-6S''' 또는 '''E-8LS''').[13][14][15][16] 1966년 3월부터 1974년 5월까지 루나는 8번의 궤도선 발사를 시도하여 6번 성공했다.[13][14][15][16]5. 5. 로버 (Rovers)
루나 17호(1970년 11월)와 루나 21호(1973년 1월)는 루노호트 탐사차를 달에 운반해서 달 표면을 탐사했다.[17] 로버를 탑재한 루나 계획 착륙선은 '''Ye-8''' (러시아어에서 음역에 따라 '''E-8''')이라는 일반적인 지정을 받았다.[17]1969년 2월, 첫 번째 루노호트 발사가 실패했다. 루나 17호와 루나 21호는 달의 지형을 탐사한 최초의 로봇 바퀴 차량인 루노호트 차량을 탑재했다.[7] 루노호트 1호는 322일 동안 10.5km를 이동했으며 20,000개 이상의 텔레비전 이미지와 206개의 고해상도 파노라마를 반환했다.[18] 루노호트 2호는 약 4개월 동안 작동했으며 42km의 지형을 이동했다.[19] 세 번째 루노호트는 제작되어 1977년에 발사될 예정이었지만 발사체와 자금 부족으로 인해 발사되지 못했다.[20]
프로톤 로켓으로 발사된 E-8은 무인 달 탐사차 '루노호트'를 탑재했다. 유인 달 착륙 후보 지점의 상세한 탐사를 목적으로 한다. 루나 17호에 탑재된 루노호트 1호는 세계 최초의 달 탐사차였다.
5. 6. 샘플 회수 (Sample Return)
루나 16호(1970년 9월), 루나 20호(1972년 2월), 루나 24호(1976년 8월)는 달의 토양 표본을 모아 지구로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 세 탐사선이 지구로 가져온 월석은 총 301g이다.[7][21][22]루나 계획의 샘플 반환 착륙선은 Ye-8-5 또는 Ye-8-5M (러시아어 음역에 따라 E-8-5 또는 E-8-5M)으로 불렸다.[21][22] 이들은 로봇을 이용하여 소량의 달 물질을 채취하여 지구로 가져왔다.
루나 15호(1969년 7월)는 아폴로 11호와 비슷한 시기에 발사되었지만,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에 착륙한 후 몇 분 뒤 산에 추락했다.
프로톤 로켓으로 발사된 E-8-5 형식은 달 토양 샘플 회수를 목표로 했다. 15호, 16호, 18호, 20호, 23호, 24호, 코스모스 300호, 305호가 이 형식에 해당하며, 이 중 16호, 20호, 24호가 성공했다. E-8-5 형식은 유인 달 착륙에 앞서 달 표면에 유해한 미생물이 있는지 조사하고, 유인 달 착륙선을 유도하는 위치 신호 발신기로 기능할 예정이었다.
6. 루나 계획의 성과와 의의
루나 계획은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된다. 특히, 소련은 미국과의 치열한 우주 경쟁 속에서 루나 계획을 통해 초기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루나 계획은 단순한 과학적 탐사를 넘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류의 도전 정신과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6. 1. 과학적 성과
루나 1호(1959년 1월)는 달과의 충돌에 실패하고 처음으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우주선이 되었다.[1] 루나 2호(1959년 9월)는 달에 충돌하였지만, 처음으로 달에 도달한 인공 우주선이 되었다.[2] 루나 3호(1959년 10월)는 달 주위를 돌아 처음으로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 사진을 전송했다.[3]루나 9호(1966년 2월)는 처음으로 다른 천체에 연착륙한 우주선으로, 달 표면을 자세히 찍은 다섯 장의 흑백 사진을 전송했다.[4] 루나 10호(1966년 3월)는 달 주위를 도는 첫 인공위성이 되었다.[5]
루나 17호(1970년 11월)와 루나 21호(1973년 1월)는 루노호트 탐사차를 달에 운반해서 달 표면을 탐사했다.[6]
루나 16호(1970년 9월), 루나 20호(1972년 2월), 루나 24호(1976년 8월)는 달의 토양 표본을 채취하여 지구로 귀환했다.[7] 지구로 가져온 월석은 총 0.326kg이다.[7]
우주선 | 발사 날짜 | 주요 성과 |
---|---|---|
루나 1호 | 1959년 1월 2일 | 달 근방 통과. 세계 최초의 인공 행성.[8] |
루나 2호 | 1959년 9월 4일 | 맑은 바다에 명중. 달에 처음으로 인공 물체를 보냄.[9] |
루나 3호 | 1959년 10월 7일 | 세계 최초로 달의 뒷면 촬영.[10] |
루나 9호 | 1966년 2월 3일 | 세계 최초의 달 표면 연착륙. 착륙 지점은 폭풍의 대양.[11] |
루나 10호 | 1966년 4월 3일 | 세계 최초의 달 인공 위성이 됨.[12] |
루나 16호 | 1970년 9월 20일 | 풍요의 바다에 연착륙. 암석 표본 채취 후, 9월 24일 무사히 귀환.[13] |
루나 17호 | 1970년 11월 17일 | 비의 바다에 연착륙하여 세계 최초의 달 탐사차 루노호트 1호가 활동함.[14] |
루나 24호 | 1976년 8월 18일 | 위기의 바다에 착륙하여 표본을 지구로 보냄. 루나 계획 마지막 미션.[15] |
6. 2. 한계점
루나 계획은 여러 기술적, 과학적 성과를 달성했지만, 다음과 같은 한계점도 가지고 있었다.- 제한적인 탐사 범위: 루나 계획의 탐사선들은 대부분 달의 특정 지역에만 착륙하거나 궤도를 돌았기 때문에, 달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정보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 짧은 임무 기간: 루나 탐사선들의 임무 기간은 비교적 짧았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친 달의 변화나 현상을 관측하기 어려웠다.
- 기술적 제약: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달 탐사선의 기능과 성능에 제약이 있었으며, 이는 탐사 데이터의 양과 질에 영향을 미쳤다.
- 높은 비용: 루나 계획은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프로젝트였으며, 이는 지속적인 탐사 활동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루나 계획은 인류의 달 탐사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으며, 이후의 달 탐사 프로그램에 귀중한 경험과 데이터를 제공했다.
7. 대한민국 달 탐사 계획과의 연관성
2022년 8월 5일, 대한민국의 달 궤도선 다누리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서 한국의 달 탐사 계획은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다누리의 개발과 발사 성공은 한국의 우주 기술력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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